"이 회사에 지원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거야.
희망직무는 반도체 연구직이야.
방금 보내준 채용공고의 직무기술서에서 중요한 직무역량 5가지를 뽑아줘."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 20대 여성 A씨는 노트북 화면 속 챗GPT에게 한 반도체 기업의 채용공고를 붙여넣으며 명령했다. 몇 초 뒤 '데이터 분석', '회로 설계 이해', '문제 해결 능력' 등의 키워드가 화면에 주르륵 떴다.
올해로 2년째 구직 활동중인 A씨는 작년부터 챗GPT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자소서 문장 첨삭용으로만 썼는데, 지금은 직무 분석부터 면접질문까지 다 맡기고 있다"며 "이제는 챗GPT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AI 쓰는 2030 취준생
자소서부터 면접까지 한 번에 해결
커리어 플랫폼 사람인이 구직자 9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AI 취업 준비 서비스 활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10명 중 4명 이상이 AI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령이 낮을수록 활용률이 높았다. 20대의 69.9%가 AI를 사용중이었으며, 이어 △30대(57.2%) △40대(42.1%) △50대 이상(29.2%) 순이었다. 실제로 많은 청년 취업준비생들이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취업 준비에서 AI 활용 분야는 다양하다. 자소서 작성부터 기업 분석, 포트폴리오 제작, 면접 질문 만들기까지 AI는 취준생들의 조력자가 됐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챗GPT로 2주만에 직무분석 끝내는 법', '서류 합격률 높이는 프롬프트 공유', '면접 볼 때 도움 되는 AI 프롬프트 모음' 같은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자소서 형식에 맞추기 위해서 AI에 어떻게 요청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수정 지시를 주는지 등을 다룬 짧은 영상들이 수천회씩 조회되며 AI 취업 트렌드를 대중화하고 있다.
또 다른 취준생 B씨는 "명령어를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자소서 퀄리티가 달라지기 때문에 'AI 자소서 프롬프트' 같은 콘텐츠를 보면 저장해두고 참고한다"며 "작년 하반기에 인턴부터 정규직까지 서류에서 계속 떨어졌는데, AI를 활용한 뒤에는 이전에 탈락했던 기업에서도 서류 합격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취준 '진입장벽' 낮추는 것 넘어 '나'를 알아가는 과정
물론 한계도 있다. AI가 때로는 거짓된 정보를 제공하고, '모범답안'처럼 보이지만 뻔한 표현을 추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많은 취준생들이 AI를 사용하는 건 취업 준비의 진입장벽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A씨는 "AI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처음 취준 방향을 잡을 때 막막한 기분은 확실히 줄여준다"며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긴 하는데 정리가 안 될 때, 그냥 챗GPT에 내가 했던 경험을 주절주절 말하면 보기 좋게 정리해줘서 자소서 쓰는 부담이랑 시간이 훨씬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B씨 역시 "막상 자소서 쓰려고 하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멍해지더라"며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도 애매했는데 챗GPT에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다 보면 그걸 정리해 줘서 자소서 작성뿐 아니라 진로를 명확히 설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많은 청년들이 취업 준비 과정에서 AI에 기대는 이유는 단순히 편해서라기보단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가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입시 중심 교육과정 속에서 진로탐색은 뒷전이었고, 진로교육은 형식적이었다.
그 결과 취업을 앞두고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되지만, 정작 이에 답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청년들은 AI를 찾는다. AI를 통해 정리되지 않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문장으로 엮고, 막막했던 자소서를 한 줄씩 채워가는 과정 속에서 청년들은 자신을 조금씩 이해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