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매년 새로운 혐오가 일어난다

 "매년 새로운 혐오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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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오랜 지인인 A씨가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 관련 뉴스를 보며 했던 말이었다. 그는 "나 어렸을 때는 참 세상이 좋았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처럼 혐오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A씨는 바로 며칠 전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화를 냈다. 그랬던 그는 사실 몇 달 전만해도 "윤석열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전에는 회사에 들어온 신입에 대해 "요즘 MZ(MZ세대·젊은 층을 일컷은 신조어)들은 이해를 못하겠어"고 말했고, 몇년 전에는 "사장 그 꼰대(기성세대를 비하하는 비속어)XX 때문에 일을 못하겠어"라고 말했다. 그런 A씨는 몇년 전에는 중국이 기술을 빼돌리고 있다며 욕을 했고, 그 전에는 "일본이 양아치X끼들"이라며 NO재팬 운동에 힘써야된다고 말했다.

A씨는 최근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와 관련해 대학교 측이 고소취하서와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일에 대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본인의 말대로 그에게는 매년 새로운 혐오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A씨는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가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마무리되고 있는지 모를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의 이유도 모를 것이다.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 당시 기자는 A씨와 다퉜던 적이 있었다. '왜 일본을 가냐', '왜 일본 물건을 쓰냐'며 따지는 A씨에게 기자는 "눈도 작은 놈이 시야도 좁다"고 대꾸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기자로써는 일본이라고 다 싸잡아서 욕하는 A씨에게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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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군대에서 전역한 직후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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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오카에서 1년간 살았고, 그 뒤 JLPT 2급을 취득했다. 일본이 좋아서 간 것도, 가까워서 간 것도 아니었다. 단지 기자의 아버지께서 일본으로 장기파견을 가셨고, 가족 중 그나마 군을 전역해서 한가했던 기자에게 '아버지와 같이 살겸 일본어 공부라도 해라'라는 어머니의 지시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자는 일본에서 단 한번도 한국인이라고,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당하지 않았다. 일본어로 인사나 '이것', '저것' 수준밖에 못하는 기자에게 일본인들을 오히려 친절하게 대응해주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물론 길을 묻는, 도움을 요청하는 기자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일본인도 많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친절했던 사람들이다. 길을 묻는 기자에게 오던 길을 되돌아가면서까지 목적지까지 대려다 주었던 한 할아버지는 기자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어눌한 한국어로 '불고기 맛있어요'라며 웃었다.

그러나 기자는 A씨를 나무랄 수 없었다. 기자는 만약 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A씨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자는 어렸을 적 정치는 커녕 뉴스에도 관심없는 생각없는 소년이었다. 화면 안에서 떠드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떠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어려운 용어로 나열된 뉴스보다 화려하게 변신하는 만화 주인공이 더 중요했다.

그렇기에 "나 어렸을 때는 참 세상이 좋았었다"는 A씨를 나무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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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비슷하게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이같은 말에 빗대어보면 '혐오'는 결국 자신에서 일어난다는 말이다.

기자가 어렸을 당시 세상에 혐오가 없었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IMF라고 불리는 '외환위기'가 찾아왔었고, 그 전에는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일어났었다. 일본은 역사교과서를 왜곡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일을 '진출'했다고 표현했고, 위안부에 대한 내용은 삭제됐으며, 식민지에 대해 미화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동북공정'이라고 불리는 중국이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을 시도했던 일 역시 당시의 일이다.

그러나 기자는 어린 시절 그런 일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외환위기보다 친구들과 대화가 중요했고, 강릉 무장공비보다 하지 않은 숙제로 혼나는 것이 더 중요했으며, 일본이나 중국보다 TV에서 나오는 '두치와 뿌꾸'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며칠 뒤, A씨와 다시 만난다.

요즈음

매년 새로운 혐오가 일어난다

윤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