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불지옥 건설현장

노동자 안전 빨간불

 "잠깐 동안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줄줄 흐른다. 마스크마저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목선풍기, 아이스조끼 모두 소용이 없다. 여름철 건설현장은 그야말로 불지옥이나 다름 없다. 여름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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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취재 목적으로 만난 한 건설노동자의 하소연이다. 최고기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연일 이어지면서 건설노동자들은 불지옥을 겪고 있다. 건설노동자는 폭염에 취약한 대표적인 옥외 노동자다. 푹푹 찌는 날씨에도 안전을 위해 안전모를 착용해야 하는 데다 외부작업 시간이 길어 열사병 등 온열 질환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와 달궈진 철로 둘러싸인 건설현장은 다른 곳보다 온도가 높다.

건설현장 온열질환은 심각한 수준이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8~2023년 온열질환 산업재해로 승인된 건수가 147건이었다. 이 가운데 건설업이 70건(48%)이나 차지했다. 온열질환 사망 사고도 전체 22건 가운데 건설업이 15건(68%)이었다.

지난해 7월에는 부산 연제구 한 근린생활시설 건축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A씨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A씨는 숨지기 직전 체온이 40도에 달하며 어지러움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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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올해 여름은 예년보다 더운 '역대급 폭염'이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기상청에 따르면 여름으로 진입하는 올 6월 기온은 평년(21.1∼21.7도)보다 높거나 비슷할 확률이 각각 40%, 낮을 확률이 20%로 예측됐다. 한여름인 7월(평년기온 24.0∼25.2도)과 8월(24.6∼25.6도)은 기온이 평년기온을 웃돌 확률이 50%, 비슷할 확률은 40%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자 주요 건설사들은 온열질환자 발생 최소화를 위해 안전관리 캠페인을 마련하고 현장 관리 강화에 나서고 있다. 예컨대 현대건설은 6월부터 9월까지를 '온열질환 예방 혹서기 특별관리기간'으로 지정하고 근로자들의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캠페인 '3고!(GO)!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포스코이앤씨는 지원팀·점검팀·대응팀의 3개 팀으로 구성된 혹서기 비상대응반을 구성해 상시 대응 체계를 마련했다. GS건설도 체감온도 31도 이상 시 보냉제품 지급과 시간당 10분 휴식을, 35도 이상 시에는 15분 휴식을 의무화했다.

다만 대형 건설사들은 자금과 시스템을 통해 대응이 가능하지만 중소·중견 건설사는 폭염 대응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휴게시설과 냉방장비 설치, 인력 운용 비용 증가 등으로 인한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이 건설노동자 157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5%는 여전히 물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응답했다. 혹서기 무더위 시간대 작업 중지는 단 18.3%, 정기 휴식은 25.4%만이 준수했다.

노동계에서는 법적 강제성이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온열질환 예방지침'에 따르면 폭염특보가 발효 중일 때 노동자들은 1시간에 10~15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휴식하고 오후 2~5시엔 옥외작업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지침은 의무가 아닌 '권고'에 불과해 무용지물이라는 평가다.

폭염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경우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산안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당초 이 개정안은 지난 1일 산안법 개정안 시행에 맞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규제개혁위원회가 "중소·영세 사업장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철회를 권고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고용노동부는 내부 검토를 거쳐 산안규칙 개정안을 재입법 예고하겠다고 밝혔다.

매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사고로 건설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폭염이 일상이 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법적 강제성 있는 폭염대책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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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