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정유업계서 돈은 누가 버나요?”

주유소 사장님들, 유가·경쟁·규제에 ‘곡소리’

주유소 사장님들 사이에서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널뛰는 유가와 인근 주유소와의 가격 경쟁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데 정부 규제까지 겹치면서 비용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문을 닫고 싶어도 수억 원대의 비용이 발생해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난달도 망했는데 이달도 망하겠네.”

단골 주유소 사장님이 기자를 보자마자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풀 탱크 날짜를 잘못 선택해서 손해보는 장사를 했는데, 이달에는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수익이 준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어딨고, 장마가 주유소 수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정도인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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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사장님 말을 들었을 때 국제유가가 떨어졌을 때 재고를 확보하고, 비싸게 구매했을 때는 가격을 올리면 수익이 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장마철에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줄어도 자차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은 늘어서 수익이 상쇄되기 때문에 망할 정도는 아닌 게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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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주유소 사장님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단골 주유소 사장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해당 사장님들 휴대폰에는 이미 국제유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돼 있었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에 바로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국제유가가 당장 공급가에 반영되지 않더라도 일정 기간 평균을 냈을 때는 비슷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에 한 사장님은 국제유가와 공급가 흐름이 일치하지 않을뿐더러 시장수요·직영 주유소나 인근 주유소 판매가·정부 정책 등이 판매가에 반영돼 국제유가와 공급가가 낮다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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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유소 사장님은 다급할 땐 ‘무속 신앙’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해바라기 그림을 걸었고 다음에는 부엉이 모형을 책상 위에 올려놨는데 소용없는 거 같아서 결정이 어려울 때는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운세를 보고 참고한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주유소 벽면에 걸린 해바라기 그림에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 1장 2절’이라고 성경 구절이 적혀있었다. 그림을 보고 웃는 기자에 사장님은 “나도 웃긴 데 최소한의 양심이야. 기도도 하고 있어”라고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장마철이 시작되면 수익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 이유도 찾았다. 원인은 유류가 아니라 세차에 있었다. 장마 시작 전까지는 꽃가루나 미세먼지 때문에 세차 손님들이 줄을 잇는데 장마철이 시작되면 세차할 필요가 없어서 손님이 뚝 끊긴다는 것이다.

“사장님, 주유소에서 유류로 돈을 벌어야지 무슨 세차로 돈을 버세요?”

답답하고 안타까움에서 나온 질문에 주유소 사장님은 기자를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라며 주유소 밖으로 데려갔다. 사장님이 손으로 가리킨 길 건너에 주유소 한 곳,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또 한 곳이 있었고, 그리고 길을 따라 우회전하면 또 한 곳이 있다고 했다.

사실 이 주유소는 기자의 아버지가 알려준 곳이다. 다른 곳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다른 동네에서도 원정을 온다며 기름을 가득 채울 때는 이만한 곳이 없다며 강력하게 추천했다. 손님이 많아서 박리다매로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생각했던 주유소에 ‘사연’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총 4곳의 인근 주유소 중 마주 본 2곳이 ‘10원’ 경쟁을 하고 있었다. 한 사장님은 ‘오일나우’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주시면서 이렇게 저렴하게 파는 주유소들은 얼마에 공급받는지 궁금하고, 우리 주유소 기름도 여기서 사 왔으면 좋겠다고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사장님이 지목한 주유소와 사장님 주유소는 1L당 250원 이상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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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에서 수익이 부족한 부분을 세차로 메꾼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주유소 운영에는 기타 비용도 많이 든다고 했다. 도로점용 사용료와 국유지 사용료부터 정부 정책에 따라 설치해야 하는 시설 등도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다. 주유소 특성상 안전에 철저해야 하는 것은 100% 동의하지만, 갑작스럽게 목돈이 들어갈 땐 막막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유류로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에 주유소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 ‘과당 경쟁’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과당 경쟁은 같은 업종의 기업 사이에서 시장 유지와 확대를 위해 손해를 보며 경쟁하는 것을 뜻한다. 과당 경쟁은 수익 악화는 물론 휴·폐업을 가속한다는 설명이다.

손해보고 장사하는 것보다 일찌감치 폐업하는 게 낫지 않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주유소 폐업에는 억 단위의 비용이 든다고 알려졌다. 계약 위약금, 토지 정화 비용, 시설 철거비 등 때문에 폐업하지 못하고 휴업을 택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주유소가 폐기물 처리장으로 변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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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을 내지 못하는 건 정유사도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 국내 4대 정유사 중 2곳이 영업 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분기에도 실적이 부진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 등으로 항공유 수출이 증가하면서 하반기에는 실적이 반등할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시장 변동성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정유업계는 정부에 SOS를 보내고 있다. 

대한석유협회는 △원료용 중유 개별소비세 면세화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대상에 대기업 포함 등을, 한국석유유통협회는 △주유소 규제 완화 및 사업다각화 지원 △석유유통시장 개선 등을 추진한단 계획이다. 정유업계의 한숨 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의 결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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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업계서 돈은 누가 버나요?”

주유소 사장님들,
유가·경쟁·규제에 ‘곡소리’

박시하 기자